학술 정보실
발굴조사보고서
軍威 佳湖里 977-3番地 遺蹟 (군위 가호리 977-3번지 유적)
개요
본 유적은 고려시대 건물지 2개소, 조선시대 건물지 1개소, 수혈주거지 81동, 석곽묘 2기, 수로 1기, 야외노지 7기, 석렬 1기, 경작유구 1기, 구 3기, 수혈 47기, 시대미상의 주혈 37개로 총 183기가 조사되었다. 유물은 총 545점으로 건물지에서 崇寧重寶, 景德元寶, 政和通寶 등 동전류와 청동소탑, 청동제인장, 각제인장, 자기류, 기와류 등이 출토되었고, 그 외 수혈주거지를 비롯한 생활유구에서 다수의 자기편과 기와편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 1호 건물지는 총 4동의 건물지를 비롯하여 배수로, 기단, 담장, 아궁이 등의 기타시설이 확
인되었고, 출토된 청자매병동체부편과 청자 접시 등의 속성을 고려해 볼 때, 14~15세기로 추정된다. 2
호 건물지는 총 5동의 건물지를 비롯하여 기단, 담장, 아궁이 등의 기타시설이 확인되었다. 출토유물로
는 청동소탑, 청동제도장, 동전류(崇寧重寶, 景德元寶, 政和通寶) 외에도 청자와 분청자, 기와가 출토되
었다. 특히 2-2호 건물지의 기단토에 매납된 진단구를 통해 그 축조시기가 고려전기에 해당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수혈주거지는 총 81동으로 조사구역의 중앙부에 밀집분포하고 있다. 평면형태는 원형과 타원
형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내부시설로는 부뚜막·구들과 같은 취사난방시설과 수혈, 주혈 등이 확인된다.
내부에서는 백자가 다수 출토되고, 일부 분청자도 확인되며, 기와나 방추차, 어망추 등도 출토되었다.
수혈주거지의 내부시설, 출토유물의 속성 등을 고려해 볼 때, 중심연대는 14~15세기로 추정되고, 서민·
특수집단의 생활유적으로 추정된다. 그 외, 생활유적으로서 조선시대 수로, 야외노지, 석렬, 경작유구, 구, 수혈 등과 분묘유적으로는 조선시대 석곽묘 2기도 조사되었다.
이상 군위 가호리 977-3번지 유적은 고려~조선시대 상활유적 및 분묘유적이 확인된 유적으로서 조사
결과로 볼 때, 본 유적을 비롯한 주변 일대는 고려시대에는 건물지로 이용되다가 조선시대에 수혈주거지를 비롯한 생활유적과 분묘유적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구종별/시대/유형및기수/중요유물/특기사항
생활유적 및 분묘유적 | 고려시대 | 건물지 2개소 | 청자접시, 백자접시, 암막새, 수키와, 암키와, 숭녕중보, 경덕원보, 정화통보, 청동소탑, 청동인장, 각제인장 등 |
조선시대 | 건물지 1개소 수혈주거지 81동 석곽묘 2기 수로 1기 야외노지 7기 석렬 1기 경작유구 1기 구 3기 수혈 47기 | 분청자대접, 백자접시, 수키와, 암키와 등 | |
시대미상 | 주혈 37개 | · |